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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왜 668년에 무너졌을까|연개소문 사후 내분과 평양성 함락

kori insight 2026. 10. 2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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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년 고구려 멸망은 연개소문 사후의 권력투쟁과 주요 지배층의 투항, 장기간 전쟁, 나당연합군의 협공이 겹친 결과였습니다.


고구려는 당나라를 여러 차례 막아냈습니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대규모 침공을 격퇴했고,

645년에는 당 태종의 공격도 안시성에서 막아냈습니다.

661~662년 당군이 평양성까지 진격했을 때도 수도를 지켜냈습니다.

즉 고구려가 처음부터 군사력이 약했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연개소문 사후에 시작됐습니다

연개소문이 사망한 뒤

장남 연남생과 연남건·연남산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중앙의 지휘체계가 갈라졌고,

연남생은 결국 당나라에 투항했습니다.

고구려 최고위층의 인물이 적국으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타격이 컸습니다.


내부 분열은 실제 방어망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연남생의 투항은 단순한 정치적 망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여러 성과 세력이 당나라 쪽으로 기울면서

고구려의 교통로와 군사 거점도 흔들렸습니다.

667년 신성이 함락되고,

668년에는 부여성과 압록강 방어선까지 무너지면서 평양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나당연합군의 협공도 결정적이었습니다

당군은 북쪽과 서쪽에서 진격했고,

신라군은 남쪽에서 고구려를 압박했습니다.

고구려는 한쪽 전선에 병력을 집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장기간 전쟁으로 누적된 부담까지 겹치면서 기존의 성곽 방어체계도 예전처럼 작동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평양성 안에서도 끝까지 의견이 갈렸습니다

668년 평양성이 포위됐을 때

보장왕과 연남산 쪽은 항복으로 기울었지만,

연남건은 끝까지 저항하려 했습니다.

결국 성 안의 승려 신성이 당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었고,

평양성은 함락됐습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부 분열이 이어진 셈입니다.


코리의 생각

고구려는 분명 강한 군사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강한 군대와 견고한 성벽만으로 국가가 오래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력 승계가 흔들리고,

지배층이 갈라지고,

그 틈을 외부 세력이 파고들면 강력한 방어망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멸망의 핵심은

외부 침략 자체보다 내부 분열과 외부 압박이 동시에 겹쳤다는 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판 링크

642년 연개소문 정변부터 안시성 전투, 백제 멸망과 나당동맹, 연남생의 투항, 신성·압록강 방어선 붕괴, 668년 평양성 함락과 이후 발해 건국까지 자세히 보고 싶다면 아래 완전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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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하게 된 과정을 연개소문 사후 권력투쟁, 지배층의 투항, 방어선 붕괴와 나당연합군의 협공을 중심으로 핵심만 정리한 인사이트 시리즈 요약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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